유럽을 여행할 때, 사람들은 파리, 런던, 로마처럼 이름 값있는 도시들을 먼저 떠올립니다. 하지만 진짜 유럽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, 덜 알려졌지만 감성이 깊은 도시를 찾아야 합니다. 바로 그런 곳이 슬로베니아의 피란(Piran)입니다. 피란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. 여행자의 속도를 늦추고, 감각을 열어주는 도시입니다. 유럽에서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피란의 특별한 이유를 지금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.
1. 유럽 소도시의 정석, 피란
피란은 슬로베니아 남서부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, 아드리아 해를 바로 마주하고 있습니다. 도시 전체 면적은 작지만, 그 안에 담긴 정서와 풍경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.
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워 베네치안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.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, 붉은 지붕과 하얀 석조 건물이 이어지는 도심은 마치 동화 속 마을을 걷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.
자동차 진입이 제한된 구시가지, 조용한 광장, 그리고 어디에서든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, 피란이 왜 '느린 유럽'의 대표 도시로 꼽히는지를 보여줍니다. 한적한 마을 속에서 걷는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도시입니다.
바로 그게 피란입니다.
특히 최근 몇 년 사이, 유럽 각국의 여행자들에게 ‘알아버린 사람들만 다시 찾는 도시’로 입소문을 타며 조용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.
2. 피란에서 보내는 하루 – 관광이 아니라 ‘삶을 사는 여행’
피란은 흔한 관광지와 다릅니다. 유명한 박물관도, 거대한 쇼핑몰도, 고층 건물도 없습니다. 그 대신, 작고 구체적인 경험들이 여행을 채워갑니다.
- 아침엔 Mestna Kavarna 같은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크루아상과 라테로 하루를 시작합니다.
- 정오 무렵엔 타르티니 광장에서 열린 마켓을 둘러보다가, 음악가 타르티니의 동상이 세워진 중심에서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합니다.
- 오후엔 세인트 조지 성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천천히 걸으며, 언덕 꼭대기에서 아드리아 해를 내려다보는 풍경을 감상하게 됩니다.
- 해질 무렵이면 피란의 Punta 등대까지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를 걷고, 붉게 물든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합니다.
- 저녁엔 Fritolin pri Cantini에서 오징어 튀김과 로컬 와인을 테이크아웃해, 바닷가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합니다.
이 하루의 어느 순간에도 ‘해야 할 일’은 없습니다. 피란에서의 여행은 ‘무엇을 봐야 한다’가 아니라, ‘어떻게 머무느냐’로 기억에 남는 도시입니다.
3. 풍경과 음식, 그리고 사람 – 피란이 주는 세 가지 감동
⦿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의 절묘한 조화
피란의 풍경은 매우 단순하지만, 그 단순함이 주는 울림은 큽니다.
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피란은 붉은 지붕들이 층층이 겹쳐져 바다를 향해 밀려 나가듯 이어지고, 그 끝에 등대와 아드리아 해가 있습니다.
특히 세인트 조지 성당의 전망대에 올라가면,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풍경 중 하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. 그곳에 서 있으면 바람이 불고, 종소리가 울리며, 하늘과 바다의 색이 서서히 바뀌는 게 느껴집니다.
⦿ 피란의 맛, 슬로 푸드의 진수
피란은 미식의 도시이기도 합니다. 크로아티아, 이탈리아, 오스트리아 음식 문화가 공존하는 이곳의 요리는 다양하면서도 균형 잡혀 있습니다.
- Pirat 레스토랑은 신선한 생선 스테이크와 해산물 리소토가 유명하며,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보며 식사할 수 있습니다.
- Ribic은 보다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슬로베니아 와인을 곁들일 수 있는 로컬 레스토랑입니다.
- Caffe Teater에선 오후 시간대, 조각 케이크와 라벤더 음료를 즐기며 잠시 피로를 씻을 수 있습니다.
음식이 맛있다는 말은 많지만, 피란에서는 음식이 평온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.
⦿ 사람 냄새나는 도시
관광객을 위한 서비스보다는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도시의 분위기를 만듭니다.
길을 물어보면 함께 가주고, 카페 직원은 당신의 여행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입니다. 바다 앞 벤치에서 혼자 앉아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도시입니다. 바로 이 ‘자연스러움’이 피란을 특별하게 만듭니다.
결론: ‘유럽에 꼭 가봐야 할 도시’를 찾는다면, 지금 피란으로
피란은 유럽에서 단 한 도시만 갈 수 있다면, 감히 추천할 수 있는 곳입니다.
그 이유는 단순합니다.
피란은 ‘볼거리’보다 ‘느낄 거리’가 많은 도시이기 때문입니다.
대도시의 화려함이나 고대 유적의 웅장함이 아닌,
하루를 오롯이 내 속도로 살아볼 수 있는 공간.
그 공간이 바로 피란입니다.
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에서 진짜 유럽을 느끼고 싶다면,
그 첫 번째 행선지는 피란이 되어야 합니다.